인생의 단맛

 

 

분무기에 소주를 넣어두고 손님이 빠질 때마다 테이블에 뿌려 마른 걸레로 꼼꼼히 닦아낸다. 물행주질만 해도 깨끗한데 그는 꼭 소주를 뿌려 마른걸레질을 한 번 더 한다. 그 일에 너무 열심이기에 한번은 호기심 많은 단골 학생이 물었다.

사장님, 도대체 뭘 그리 열심히 닦아내요?”

젊은 사장은 눈도 안 맞추고 대답한다.

인생의 단맛

 

그의 말대로라면 손님이 있던 자리에는 인생의 단맛이 흩어져 있다는 것인데, 젊은 사장은 인생의 단맛을 오물이나 쓰레기 취급하듯 닦아내는 데 열심이니 아무래도 좀 희한한 일이었다. 그의 가게는 지하에 박힌 술집이었지만 아무튼 그가 열심히 인생의 단맛을 닦아내기 때문인지 늘 쾌적하다. 비오는 장마철도 꿉꿉함 없이 지나갔다.

 

가게 열 준비를 마친 젊은 사장은 떨어진 재료가 없나 주방을 둘러봤지만 하나같이 아직 여유가 있다. 밖에 나가볼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때마침 음악이 끊겼다. 그는 다음 곡으로 뭘 들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서칭포슈가맨 OST’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이제 이렇게 한두 곡 듣고 있자면 오늘의 첫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설 것이다. 젊은 사장은 아직 반 넘게 남은 분무기를 열어 인생의 단맛을 닦아낼 소주를 가득 채워 넣는다.

 

대학가에 있는 술집이니 거의 모든 손님이 학생들이었다. 이따금 자신의 소탈함을 좀 과하게 주장하는 늙은 교수 몇이 학생들을 따라 이곳에 들어올 때도 있었지만, 그들이 가고 나면 공연히 소주를 더 열심히 뿌릴 일만 생겼다. 젊은 사장은 과장된 언행을 유독 불편해했다. 고급술집은 아니지만 음악과 주인의 품행에 꽤 매력이 있어서,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은 금세 술에 취했고 젊은 사장과 빨리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형 동생 하자는 사람, 오빠 동생 하자는 사람, 친구 하자는 사람... 아무튼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과장되고 경솔한 고백으로 떼쓰는 햇병아리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짜증을 내는 일이 없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위트 있게 상황을 넘기곤 했는데, 적절한 태도와 무관심이 오히려 그를 더욱 매력 있게 했다. 그래도 매일같이 술 취한 경솔함과 거만함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젊은 사장은 외로웠다.

 

Sugar Man, won't you hurry? 슈가맨, 서둘러 주겠니?

'Cause I'm tired of these scenes... 이 삶의 풍경이 너무 지겹거든...

 

물을 뚝뚝 흘리며 중년의 사내가 들어왔다. 나이는 마흔을 살짝 넘겼을 터였다. 사내 뒤에는 좀 더 젊은 사내가 고향후배 같은 얼굴을 하고 따라 들어왔다. 깔끔한 젊은 사장은 우산 꼭지와 중년의 사내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우산꼭지에서는 빗물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젊은 사장은 우산꽂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 그들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손님 같지는 않고 뭔가 다른 용건이 있어서 들른 게 아닌가 싶었다. 가게 근처 골목에 주차해둔 자신의 차를 좀 긁어먹은 게 아닌가 싶었다. 서로가 잠시 멀뚱거리고 있다가 중년의 사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막일 다니는 사람입니다만

일 마치고 가다가 길가로 들리는 음악이 좋아서 들어와 봤습니다.

젊었을 때 음악을 했습니다.

혹 실례되지 않는다면 여기서 술 한 잔 하고 가도 되겠는지요.

 

젊은 사장은 자신이 잠시 머뭇거렸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재빨리 그들에게 가게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안내하고는 메뉴판을 냈다. 사내들은 메뉴판을 한참 바라보다가 국산맥주 2병을 시켰다. 그리고 이거 주세요 하며 고르곤졸라 피자를 가리켰다. 젊은 사장은 주문을 받다가 마른 오징어 같은 안주를 마련해두지 않은 걸 잠시 후회했다.

 

사내들은 둘 다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고 남는 의자에 각자의 가방을 하나씩 올려두었다. 아마도 저 가방에는 오늘 종일 땀에 전 작업복이 들어있을 것이다. 학생들의 발랄한 가방들을 보다가 검은 두 가방을 보고 있자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안주는 열심히 만들어 냈지만 그들은 별로 안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낯선 손님들은 과묵하게 맥주잔을 기울였다. 좀 더 젊은 쪽은 가끔씩 둘레둘레 액자며 조명 그리고 이런저런 소품들에 시선을 뒀지만, 젊어서 음악을 했다는 그 사내는 마치 몰락한 인디언 마을의 추장처럼 꼼짝 않고 앉아서 술을 마셨다. 행색이 남루했지만 뭔가 기품이 있다고 젊은 사장은 생각했다.

 

맥주가 열 병 정도 나갔을 때 학생들이 밀려와 여기저기 삼삼오오 테이블을 차지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사내 둘을 학생들이 가끔씩 힐끗힐끗 바라봤다. 가게 안은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대학가답게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는 테이블도 있고, 혼자 바에 앉아서 책장에 꽂힌 만화책을 보는 이도 있고,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해서 서로가 너무 맛있는 안주가 되어 술빨이 오르는 테이블도 있었다. 하지만 사내들의 테이블은 여전히 과묵했고 오직 맥주잔만 기울고 있었다.

 

밀린 안주 주문을 열심히 처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 소리가 사라지고 음악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중간 중간 어디선가 꽝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하다 흥분한 학생이 테이블을 술병으로 내리치나 싶어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학생들은 모두 순한 양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중년의 사내가 열심히 테이블에 제 머리를 박아대고 있었다. 하얀 테이블은 피가 낭자해있고, 같이 왔던 후배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손님들은 모두 겁을 먹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말릴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단골 학생 하나가 사장 귀에 대고 속삭였다. 경찰에 신고할까요?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나뒀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가 점점 많이 터져 나와서 테이블 아래 바닥까지 흘러내렸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머리를 망치처럼 테이블에 연신 박아댔다. 다행히 이미 신고전화를 한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 2명이 가게로 내려왔다. 경찰들은 묻지도 않고 사내의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사내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 경찰을 잠시 쳐다보더니 순순히 따라 일어났다. 피가 얼굴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렸다. 신고했던 남학생이 경찰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 빨리 잡아가세요. 여기 사람들을 다 협박했어요. 아주 위험했다고요. 사내는 떨궜던 고개를 잠시 들고는 말했다.

 

나 위험한 사람 아닙니다. 남들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았어요. 협박이라뇨.

난 괴로운 일이 있어서 자해를 좀 했을 뿐이에요.

사람들이 겁먹었다니 사과합니다.

난 다만 자해를 했을 뿐이에요.

 

경찰은 젊은 주인에게 혹시 기물파손은 없는지 물었다. 젊은 주인은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평소와는 좀 다른 인생의 단맛이 흩어져 있을 뿐, 딱히 부서진 것은 없었다. 사내는 경찰에 끌려서 가게 문을 나가다 말고 고개 돌려 젊은 주인을 바라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사내의 눈빛이 젊은 주인에게 쓰리게 박혔다. 하지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사내가 끌려 나가자 가게에 있던 사람들은 무용담 나누는 듯 잠시 다시 왁자지껄해졌지만, 왠지 자신들이 무슨 공범자들 같은 기분이 들어선지 서둘러 자리를 파하고 가게를 나갔다.

 

젊은 사장은 일단 마른 휴지로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물에 적신 휴지로 한 번 더 닦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잠시 테이블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분무기로 소주를 뿌린 후 다시 걸레질을 하다 말고 손을 멈췄다. 다시 사내의 눈빛을 떠올려봤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나에게 함부로 호감 같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 아니었을까? 젊은 사장은 문득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어쩌면 그 중년의 사내가 자신이 기다리던 슈가맨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하다 멈춘 걸레질을 마저 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결코 아무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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