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날 불모지

 

 

1.

그와 그녀는 연애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은 사이였다. 지인들은 이 둘의 친밀성에 도대체 끼어들 수도 없다며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다. 한 십 년 그렇게 가까이 지냈지만 세상의 인연이 대개 그렇듯, 둘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아졌고, 심지어는 지인들 앞에서 상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불만들은 한 다리 건너 서로에게 또 전해져서 사이가 더욱 나빠졌다. 급기야 한 동네에 살던 그녀가 이사를 가버렸다. 그 뒤로는 가끔 안부를 전해 들었을 뿐, 얼굴 마주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그녀의 나이도 이제 마흔을 넘어섰다. 그녀는 그를 만나며 지내느라 소원했던 동창과 친구들을 만났다. 나름 대학 때에는 민중 운동도 하고 의식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의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그녀들은 맛집에서 만나 이 세상이 얼마나 절망 속인가 한참을 이야기 했고 도대체 어찌 살아야 하는가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미 아파트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고, 자녀들의 사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세상의 더 젊은이들은 대개 아직 전셋집도 없고 월세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분식집의 김밥과 라면을 상복하고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절망하고 있듯이 그녀들도 도대체 잘 사는 법을 몰라 열심히 이야기하며 갖은 맛난 음식들을 입에 넣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모임에 아무래도 섞이질 못했다. 집에 오는 길에 그녀는 그에게 문자 한 줄을 보냈다.

 

2.

그는 해질녘 광화문 역사박물관 앞을 걷고 있었다. 웬 아주머니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그 앞에 멈춰 섰다. 자전거는 작아서 초등학생들이 타는 것처럼 생겼다. 저 말씀 좀 묻겠수다. 의정부 가려면 어찌 가얍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조선족 동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의정부요? 자전거로 가시기에는 너무 먼데요. 그래도 좀 알려주세요. 그는 하나 남은 담배를 꺼내 귀에 꽂고 담뱃갑에 어설픈 약도를 그려주었다. 하지만 그 약도를 보고 그녀가 홀로 의정부까지 간다는 것은 우주선이 우주정거장에 도킹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는 그녀가 지나야할 종로와 을지로 청계천 그리고 대학로와 아리랑고개와 미아리를 떠올렸다. 그녀가 일하는 주인집 가족들은 어디 여행이라도 간 걸까? 뜬금없이 휴가를 얻은 그녀는 지금 의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조선족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설마 차비가 없었던 건 아니겠지. 어쩌면 그녀는 그저 간만에 시원하게 달리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퇴근길에는 차폭등을 붉게 밝힌 차들이 빽빽하게 밀려있었다. 그녀의, 아니 어떤 어린이의 자전거가 그 사이를 비뚤비뚤 헤쳐 간다. 바로 그때 그는 친구에게서 아니 한때의 친구였던 그녀에게서 문자를 받았던 것이다. 전화기에는 이런 글자들이 적혀있었다.

 

어찌 잘 살아보려 했는데, 매일매일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난 걸 먹고

잘 사는 법을 수다하며 지내니 신물이 올라와.

 

그는 문자를 들여다보며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자전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와 함께 의정부까지 타고 가고 싶어.

그게 너는 아닌데, 너였어도 아마 그 사람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었을 거야.

 

그녀가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

 

그럼 언제 셋이 같이 자전거를 타고 의정부에 가자.

 

그는 그녀의 문자를 읽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때마침 신호등이 바뀌어서 사람들이 우르르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 훔치고 그들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았다.

 

3.

그녀는 침대에 누워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습관적으로 읽다 말고 자전거를 검색해봤다. -사람의 힘으로 바퀴를 회전시켜 움직이는 이륜차- 백과사전은 그렇게 자전거를 정의하고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그녀는 이 구절을 읽으며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세상은 아무래도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사람보다 더 한 무엇인가가 있어서,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인다.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움직이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몇몇 세상의 부적격자들이 폭발적인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화도 제대로 못 내고 산다. 당당하게 화를 낼 수 있는 이들은 아주 천재이거나 세상의 권력을 많이 갖은 사람일 것이다. 더욱이 분노가 일어도 그 분노의 근거를 타당성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만 분노할 수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소리 없이 분노하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괴로움을 지니고 산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지만 그게 뭔지 모른다. 그 와중에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바퀴를 회전시켜 움직이는 기계가 있다니, 그녀는 너무도 오랜만에 자전거를 신나게 한번 타보고 싶어졌다. 그녀는 그가 보낸 문자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자전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와 함께 의정부까지 타고 가고 싶어.

그게 너는 아닌데, 너였어도 아마 그 사람과 자전거를 함께 타고 싶었을 거야.

 

다시 읽어보니 이 문자는 어쩜 혁명이나 사랑에 관한 문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힘으로 바퀴를 회전시켜 누군가와 함께 의정부까지 간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만한 아무런 정보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군가가 세상에서 말하는 흔한 멋진 이는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나마 그녀는 그의 친구였다. 그의 글자들이 이토록 뭉클한 건 어쩌면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이 내는 외로운 소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라는 사람, 모르긴 몰라도 이 세상에서 고통 받고 있지만, 아직은 먹히지 않은 두 다리가 있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 두 다리가 아니면 한 다리라도 있는 사람일 거였다. 그녀는 이런 저런 상념에 휩싸이다 말고 침대에 널브러진 자신의 두 다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 다리로 도대체 어디를 이토록 걸어 다니며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문자를 읽어봐도 왜 하필 가고 싶은 곳이 의정부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다만 그곳이 서울의 북쪽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4.

북쪽은 어떤 쪽인가. 북망산이 있는 쪽이 북쪽이다. 그곳은 춥고 외로운 곳이겠지만 북망산은 아직 이 세계가 삼키지 못하는 그런 곳이다. 어쩌면 이 세계가 포기한 존재들, 혹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이 마치 그 북쪽에 살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는 도대체 뭘 본 걸까. 그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은 그 누군가는 도대체 누구일까.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왠지 조만간 그와 다시 연결될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정이 다 되어 가는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그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대자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다 각자의 행복을 찾아 간 거 같아.

 

그녀는 뭐라 대답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행복을 찾아 간 거 같아......눈을 감고.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마술피리를 떠올렸다. 마을의 소년들이 모두 마술피리 소리를 따라가서 사라졌을 때, 절름발이 소년만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남았던 그 이야기. 사람들은 그를 남겨두고 도대체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는 어안이 벙벙하게 절망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한데 희한하게도 그의 목소리는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뭔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전화기에 대고 되도록 침착하게 물었다.

 

넌 지금 어디에 있니?

 

전화기는 차마 그녀의 말을 다 접수하지 못하고 끊겼다. 그녀는 전화기와 지갑만 챙겨들고 입은 옷 그대로 집을 뛰쳐나갔다.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오가는 택시가 없다.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는데 인적 없는 도로에 자전거를 탄 아주머니 한분이 천천히 지나간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북망산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위가 인적 없이 고요했다. 천상의 소리 같던 그의 전화 목소리도 어쩌면 이런 곳 어디쯤에서 들려온 게 아니었을까. 그도 여기 어디쯤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택시 잡는 걸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와 문자 하나를 보내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잘 자. 우린 친구가 필요 없는지도 몰라, 우린 아직 다 잃지 않았으니까.

다음에 만나면 우리는 더 가난해 있겠지? 하얀 국수라도 삶아먹자.

만약 그때도 우리가 운 좋게 행복의 나라로 접어들지 않았다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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