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첫째 편) 행복은 표현하기 어려워

 

 

 

   

 

 

 

 

한동안 소원했던, 아니 사이가 무척 안 좋아진, 그래서 한 2년 넘게 얼굴도 안 보고 지내던 친구와 함께 도보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이야기도 없이 걸었다. 여름의 끝인데 햇살이 너무 뜨거웠다. 영월 오일장에서 분홍색 꽃무늬 수건을 사서 머리에 얹고 그 위에 군모를 쓰고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을 한참 오르니 고개 펑크라는 타이어 가게 간판이 보인다. 날은 뜨거웠고 아름다운 풍경도 관심 없고 다만 화가 난 사람처럼 무작정 걸었다. 강물이 길을 따라 흐르고 있었지만 차들이 무섭게 쌩쌩 지나갔다. 걷기에는 말도 안 되는 길이었지만 계속 걸었다. 거의 일사병에 걸릴 즈음이 되서야 어떤 한적한 마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해질녘이고 주민들 몇이 큰 마을나무 아래서 포도송이들을 포장하고 있었다. 몇 송이 살 수 있냐 물으니 만원에 한 쟁반 가득 가져다준다. 우리는 갓 딴 포드를 송이채 들고 뜯어먹었다. 감격적인 맛이었다. 포도로 갈증을 좀 삼키고 나니 그 뜨겁던 태양빛도 좀 잦아든다.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었지만 숙소는 없다고 했다.

 

때마침 오늘의 마지막 버스가 마을에 들어섰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시골마을과는 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글스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깜깜해져서 도착한 버스의 종점은 상동이라는 곳이다. 상동읍은 대한중석 상동광업소가 한창 가동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대표적인 부촌이었다. 그러나 상동광업소가 1994년 문을 닫자 지역경기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폐광촌으로 전락한 곳이다. 기사님 말로는 이 마을 어디에서 숙소를 구할 수 있을 거라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내리니 도대체 숙소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숙소는커녕 마을에는 아무도 뵈지 않는다.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아봤지만 문이 닫혔다. 조금 더 지나서 만난 구멍가게도 문이 잠겨 아무도 없다. 도대체 이 마을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건가. 불과 몇 년 전에는 분명 사람들이 꽤 살았는데,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건가. 정말이지 마을에 단 한 명의 사람도 없다. 마을을 뒤져 간신히 상동민박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간판에 적힌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하니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어쩌지요? 저는 삼척에 일이 있어서 와 있습니다. 현관문이 열려있을 거예요. 들어가서 빈방에 들어가 쉬세요. 이불은 일층 끝 방에 있으니 가져다 쓰시면 됩니다. 하룻밤 2만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어디 갔죠? 주민이 없나요?”

아니요, 사람들은 지금 꼴두바위에서 열리는 마을 축제장에 가 있을 거예요.”

방은 작지만 새로 도배와 장판을 했는지 깨끗하다. 그 작은 방에 누우니 발이 벽에 닿을 듯 말 듯 한다. 아늑했다. 아무도 없는 마을에서 우리는 그렇게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날은 영동선의 오지 석포역을 향해 걸었다. ‘가곡이라는 아름다운 마을을 지나는데 큰 도로인데도 오가는 차가 없다. 한참 걷다가 보니 버스 한 대가 멈춰서고 버스에서 중학생으로 뵈는 어린 소녀 하나가 내렸다. 기사님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님도 없는 텅 빈 버스가 이 소녀를 위해 태백시에서 이곳까지 등교와 귀가를 시켜주는 셈이다. 오후 햇살이 길가에 바투 서있는 산자락에 걸려 비스듬하게 쏟아졌다. 하루 지났을 뿐인데 어쩌다 이런 한가한 곳에서 이토록 한가히 걷고 있는지 연유도 모른 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한참 걷다보니 눈앞으로 청옥산이 우뚝 서 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몇 시간 계속 올랐다. 땀이 비 오 듯 흘러내렸다. 정상 가까운 곳에서 드넓은 곳이 펼쳐졌다. ‘삼방이라는 산골마을로 이어지는 길이었는데 얼마나 높이 올랐는지 우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길이 저 아래 까마득하고 산자락이 겹겹이 펼쳐 보인다. 그 중 멀리 보이는 산들은 푸른 공기로 이루어진 듯 투명해 보인다. 차를 타고도 가끔 올라오곤 하던 곳이지만, 걸어 올라오니 감회가 새롭다. 이곳에 올라올 때마다 보이는 작은 집 한 채가 늘 궁금하다. 하지만 찾아가 본 적은 없다. 늘 이곳에서 작은 집을 바라본다. 언젠가 내가 저 곳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다.

 

 

    

 

 

해질녘 넛재에 올라섰다. 걸어서 첫 번째 도경계를 넘는다. 이곳은 강원도 태백과, 경북 봉화군의 경계다. 우리는 해가 지고 깜깜해지도록 그곳에 앉아있었다. 낮 시간 작렬하던 태양도 계절을 넘어간 것 같다. 우리는 남은 물을 다 마셨다. 거리로만 계산을 했지 이렇게 오르막일 줄은 몰랐다. 물이 떨어졌지만 이제는 하산길이다. 영월장에서 샀던 작은 랜턴을 밝히고 깜깜한 어둠 속을 두어 시간 걸었다. 하지만 건전지가 불량인지 불빛이 금세 어둑어둑해진다. 그때 지나가던 승용차가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어디까지 가세요?”

석포까지 갑니다.”

보아하니 젊으신 것도 아닌 것 같은데...무전여행 중이신가봐요?”

 

무전여행이라...우리는 좀 난감한 얼굴을 하지만 딱히 대답할 수가 없다. 정색을 하며, 아니요 우리 돈 있어요! 라고 주장할 수도 없고, 더욱이 젊지 않다는 말에는 반박할 처지도 아니다. 아무튼 그 양반 덕에 식당들이 문 닫기 전에 석포에 도착했다. 배가 너무 고프다. 우리는 삼겹살을 시켰다. 광산마을에는 역시 삼겹살이 맛있다. 돼지 껍질이 붙어있어 쫄깃하고 반찬도 실하다. 나는 다른 계절에도 이 마을에 몇 번 온 적이 있다. 그때는 펑펑 눈 내리는 밤이었다. 연탄으로 방을 지피는 경기여인숙에서 잤다. 밥 먹다 말고 경기여인숙에 대해 물으니 그곳은 몇 해 전 화재로 문 닫았고, 이제는 서울 여인숙만 한다고 한다. 식당주인이 서울여인숙에 전화해서 방이 있는지 알아봐주었다. 한데 방이 없다고 한다. 낭패였다. 식당주인은 당황하는 우리를 보더니, 어차피 마지막 손님이니 밥 다 먹고 식당에서 자고 가란다. 자신은 내일 아침 5시부터 나와서 아침 식사 준비한다고 그때 깨워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그녀가 내어준 참외를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당 아주머니는 작년에 남편이 죽었다. 하지만 일 년 만에 또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죽은 남편도 그립고, 동시에 새로 만난 남자도 좋고... 그래서인지 슬프다 행복하고 행복하다 슬프고 그런 것 같았다. 행복은 드러낼 수 있어도 슬픔을 드러내기는 어려웠을 눈치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자식들 뒷바라지가 끝나면 자신도 이렇게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자리를 뜨셨다. 세면장에 물을 틀어놓고 바가지로 퍼부으면서 샤워를 하고 식당에 딸린 방에서 밥상들을 사이에 두고 잠을 청했다. 몸은 피곤한데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같이 걸어온 친구는 이불을 둘둘 말고서 식탁 너머에서 뒤척였다. 밤공기가 쌀쌀했다. 나는 꼬박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어슴푸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에 일어나 친구와 함께 마을 산책을 했다. 동양최대의 아련 제련소에서는 벌써부터 수증기가 올라오고 그 한쪽에 좁은 골목길 하나로 이루어진 마을이 이곳 석포다. 영동다방, 종합 화장품, 장풍반점, 석포 약국...이런 간판들 몇을 지나면 금세 마을이 끝난다. 하지만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만큼 좁은 이 골목길에는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아침밥은 제련소에서 일하는 사내들과 함께 콩나물국을 먹었다. 그 사내 중 한 명이 이 식당 아주머니의 새 남자다. 어제 휴대폰 사진으로 봤던 얼굴이라 금세 알아봤다. 서글서글하고도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였다. 우리는 아침밥 값을 내고 고맙다고 인사드렸다. 아주머니는 그 남자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살짝은 사무적인 듯한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 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따뜻한 인사를 읽었다.

 

석포역에서 첫 기차를 타고 춘양쪽으로 향한다. 찻길도 닿지 않는 역들이 그 사이 몇 있다. 하늘도 세 평 땅도 세평이라는 승부역이 있고, 하루에 기차만 딱 2번 다니는 양원역도 있다. 영동선은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기찻길 따라 계속 계곡이 이어진다. 걷는다면 물을 넘을 수가 없으니 산을 몇 개는 넘어야할 험한 길이지만 기차 덕에 우리는 금세 분천역에 도착했다. 역사가 새 단장을 했지만 예전의 분천역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 않아 마음을 끌었다. 영동선 자락 중에서도 이 일대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지만 분천은 늘 지나치기만 하던 곳이라 이번에는 며칠 묵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었다. 맑은 아침이 가득한 그림 같은 역사를 빠져나와 역전 향촌슈퍼에서 아침볕을 즐기며 커피를 마신다. 근처에 옥수수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이제 막 옥수수를 찌려고 가마솥에 물을 쏟아 붓고 있다. 옥수수가 언제쯤 쪄지냐고 물으니 30분쯤 있다가 오란다. 그 사이 자그마한 분천마을을 산책했다. 집집마다 올망졸망한 화분들이 내어져있고, 그림 같은 계곡물이 마을을 따라 한적하게 흐른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오니 아저씨는 이제 막 옥수수를 꺼낸다. 한 쟁반 가득 옥수수를 받았다. ‘미백이라는 품종이라는데 반듯하게 알이 촘촘히 박힌 모습도 모습이거니와 사카린도 없이 따오자마자 바로 쪄낸 해맑은 옥수수 맛이 가히 일품이다.

 

 

 

 

 

향촌슈퍼 2층에 있는 민박에 짐을 풀고 가방 하나에 물과 빵 몇 개를 챙겨서 길을 나섰다. 승부역까지 가면 해가 지겠지만, 거기서 다시 마지막 기차를 타고 이곳 분천역까지 돌아올 수 있다. 계곡을 끼고 걷다가 마을을 벗어나면 낮은 다리들과 철길이 이어진다. 다리에 걸터앉으면 발 사이로 계곡물이 흐른다. 걷다가 이따금 만나는 기차에 손을 흔들면 다들 또 손을 흔들어준다. 맑은 계곡에 쏟아지는 햇살이 찬란해서 인적 없는 길이지만 걷다가 절로 가슴이 설렌다. 길을 떠나기 전에 마을 주민들에게 몇 시간이나 걸리는 길인지 물어도 다들 잘 모른다. 이 길을 기차를 타지 않고 다녀본 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중장년의 사내들도 기억이 없다고 했다. 부지런히 걸으면 해질녘 승부역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만 했다. 주민들도 잊은 길을 소원해진 친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난간이 다 무너져 내린 다리에 걸터앉아 쉬기도 하고 계곡의 너럭바위에 누워 졸기도 한다. 어쩌다 이 길은 이토록 세상에서 버려졌을까, 오가는 사람들이 없다. 조만간 새로운 트레일로 입소문이 날수도 있겠지만, 이 길은 아직은 충분히 고요하다. 그렇게 8키로쯤 물을 따라 걸으면 이제 길은 산길로 이어진다. 넓은 물은 이제 더 투명한 계곡물이 된다. 우리는 맑은 계곡에 앉아 발을 담갔다. 며칠째 하루에 30km쯤 걸었는데 오늘은 소풍 온 것처럼 한가하다.

 

 

 

 

 

 

 

 

 

 

 

 

이런 길들이 분천역 주변에는 가득하다. ‘낙동정맥 트레일혹은 외씨버선길등등의 이름이 붙은 곳도 있지만, 굳이 그런 트레일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하나같이 걷기 좋은 길들이다. 걷다가 힘들 때도 있지만 아주 자주 혼자서 발을 동동 구를 만큼 좋다. 하지만 그것은 외로운 일이다. 걷다가 너무 좋아서 뒤를 돌아보면 소원했던 친구가 묵묵히 걸어온다. 거리가 벌어지면 잠시 어디라도 앉아서 친구를 기다린다. 함께 앉아서 쉬다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친구는 며칠 걷다가 춘양터미널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버스표를 끊어 그녀에게 내민다.

 

잘 올라가.”

그래 잘 걷다 와.”

 

헤어지면서 처음으로 친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속에는 내가 본 것들이 있을 것이다.

 

버스가 떠나고 나는 터미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지치고 헐벗었을 때라야 간신히 달빛이 비춰줍니다

 

이 길 끝 어디, 세상의 출구가 있는가요

 

그러면 아직 멀었네요

그 꿈이 사라져야겠네요

나를 잃고 싶어서

내가 사라질 때까지 걸어서

그리고 끝내 듣고 한 마디

 

아직 멈추지 않고 걷는 이들이여, 걷다가 죽어버려라

 

지치고 헐벗었을 때라야 간신히 나도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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