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니 동호회

 

 

강해져야 해요. 쉽게 지는 꽃이 되진 말아요.”

그의 아내는 이런 유언을 남겼지만 그 임종의 순간에 그는 속으로 들리지도 않을 이런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아니야, 더 시들어야해.’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고 자식도 없는 그는 맘 편히 엉망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자꾸 힘을 내라고 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죄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그렇다고 의욕 없이 이렇게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낮 시간은 주위가 산만하니 그럭저럭 살아졌다. 자정이 넘고 밤이 깊어지면 그는 미동도 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주 벽에 머리통을 박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꽤 부지런한 사람이 할 일이었다.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벽까지 가야하고 우선 머리를 세게 뒤로 젖혀야한다. 가끔은 제 몸에 어디 전기충격이 가해진 것처럼 벌떡 일어나 앉기도 했지만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었다. 벌떡 일어나 있는 어색한 몸뚱이를 다시 제 자리로 누이기 번거롭기만 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몸에 심각한 방부처리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가만히 있어도 제 뼈들은 더욱 뻣뻣해질 뿐 좀처럼 시드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만히 꽤 있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제 몸에 독이 얼마나 많이 스며들었는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가 동네 분식점에서 김밥 몇 덩이를 간신히 제 입까지 가져가고 있을 때 TV에서는 일사병으로 사람들 몇이 픽픽 쓰러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기온이 체온보다 더 높게 올라가는 날이었다. 하지만 이미 해질녘이었다. 그는 반도 먹지 않은 김밥 값을 계산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해지는 쪽의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 동쪽이었겠지만 왠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해지는 쪽의 반대쪽이었다. 해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는 방향도 없이 걸었다. 그가 다시 시계를 본 것은 자정이 한참 지난 뒤였다. 그 사이에 그는 한 번도 안 쉬고 걸었다.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는 걷는 것을 멈출 힘이 없었다. 두 다리가 펄럭거리고 있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몸이 자꾸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가 걸음을 멈춰선 곳은 산동네 어느 문 닫은 구멍가게 앞 평상이었다. 제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멈췄지만 마을버스도 끊겨서 다시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할 상황이라 다만 그곳에 앉아 있었다.

 

우리 몸의 체온이 36.5도잖아요. 때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요. 근데 왜 지금은 27도인데 이리 더운 거예요? 오히려 좀 서늘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평상 옆 거울에 붙어 있는 온도계를 보면서 웬 여자가 그가 마치 이 열대야의 원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추궁하며 묻고 있었다. 열대야에 잠 못 이뤄서 짜증이 난 예민한 지구인이라고 여기면 그만이었지만 그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체온 36.5도와 기온 27도가 만나면 63.5도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더운 거죠.”

 

자책밖에 할 게 없는 세상이 지겹지만, 스스로가 이 열대야의 참을 수 없는 원인이라는 건 왠지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녀는 시큰둥한 얼굴로 평상의 한쪽에 앉았다. 가끔씩 모기를 쫓느라 부채질을 할 뿐, 아침이 밝을 때까지 그녀는 그의 옆에 앉아있었다. 그 사이 그 둘은 아무 말로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는 가마니 동호회의 시삽이 되었고, 그녀는 부시삽이 되었다. 세상에 흩어진 가마니들은 너무도 많았다. 가마니 동호회는 소리 소문도 없이 금세 회원 수를 늘려갔다. 그들은 이따금 카페에 공지를 올려 오프모임을 가졌지만, 열대야가 되면 아무런 공지 없이도 한강 둔치에 모였다. 모이면 서로 인사도 없이 그저 미리 온 회원 곁에 가만히 앉았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이지 왜 굳이 함께 모여 가만히 있어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회원 수는 점점 늘어갔다.

 

가만히 있고 싶다는 것은 우리의 순결한 욕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처이고 증상이지요. 상처란 건 누구와도 나눌 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목숨이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우리의 이름은 없지요. 그래서 우리는 함께 모여 우리의 이름을 얻습니다. 우리는 가마니 동호회입니다.

 

오프모임이 있을 때면 신입회원 중에 몇몇은 종종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모임은 시작도 끝도 없었다, 몇 시간 함께 하다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고, 날이 밝을 때까지 남아 있다가 출근을 위해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대개는 시삽과 부시삽만 마지막까지 남곤 했다. 그들은 어떤 것도 조직화하지 않았다. 원칙을 가진 이들은 제 원칙에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회원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지만 시삽과 부시삽은 누구보다 가만히 있었다. 오프 모임이 끝나 회원들이 흩어지고 단 둘이서 선지해장국을 한 그릇씩 할 때면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 중에 슬픈 낯빛이 있었다. 식당의 벽에는 기름먼지 낀 싸구려 액자에 최후의 만찬이 걸려있다. 어떤 의욕적인 회원이 나타나면 이 두 사람은 아마도 동호회에서 축출될 것이다. 그리고 카페에는 적어도 요가매트 광고배너라도 몇 붙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적어도 둘은 최대한 가만히 있을 것이다. 아침 뉴스 일기예보에는 오늘밤도 열대야가 지속될 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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